요즘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있는데요. 바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송중기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훨씬 더 연기력이 충만한 배우 이성민 씨가 있습니다.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를 선보이셨지만, 제가 기억하는 드라마라고 하면 미생입니다. 재벌집이라는 회장이라는 타이틀 대신에 이성민 씨는 엄청난 생활고와 무명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배우 이성민 씨는 1968년생으로 올해 55세입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서 태어났으며 영주시의 중학교로 진학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인 고등학교 때 시민 회관에서 영화를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본인 스스로도 배우의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도전해보려고 하자. 이성민 씨의 아버지가 냉면을 먹으러 가자며, 냉면을 먹으며 연기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여행을 다녀오라며 돈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를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지원했는데 고등학교의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고 무슨 배우냐는 식으로 약간의 무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성민의 아버지는 그 대학원서를 찢어버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이성민 씨는 배우의 꿈을 접게 됩니다. 하지만 열정을 끊이지 않았고 재수생 시절에 소백산 철쭉제를 놀러 갔다가 연극단원 포스터가 눈에 들어와 극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모님 모르게 극단 생활을 해오다가 독서실 사감이 이성민 씨의 어머니에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늦게 들어온다며 폭로하자, 어머니는 물론이고 고모까지 와서 연극생활을 못 하도록 만류했습니다. 그렇게 또 꿈을 접고 군대를 가게 됩니다.
대구에서의 생활
군대를 제대 후 , 어린 시절 열망을 식지 않았고 어느 연출자의 소개로 대구로 오면 담배와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해서 무작정 대구로 가게 됩니다. 정말 작은 방에 달랑 커피포트 하나만 있었고, 작은 창문 정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잠은 극장에서 자고 밥도 못 먹고 눈치를 봐가며 남들이 먹을 때 옆에서 껴서 먹었다고 합니다. 배가 고파서 울은 적도 있다고하는데, 하루는 배가 고파서 끊은 물에 커피프림과 마가린, 설탕을 섞어 먹었다고 합니다. 정말 서러워서 베개를 붙잡고 울었다고 합니다.
이성민 씨는 내 생에 최악의 음식이 바로 그때였다고 웃음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얼마나 처참했는지 1,000원짜리 떡볶이를 먹으면서 아주머니에게 국물을 좀 더더더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걸 먹고 배탈이 난 적도 부지기수였고요. 그러던 중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가졌는데, 보통은 아이가 태어나면 축복이었지만, 난생처음 등에 땀이 난정도였다고 표현했는데요. 그만큼 이성민 씨가 얼마나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서울생활
서울에 올라와서는 더욱더 힘든 생활이었다고 합니다. 포스터를 붙이는 걸로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었다고 하는데 이 100만 원은 100원짜리 포스터를 만장을 붙여야 받을 수 있는 돈이 라고 하네요. 포스터를 붙이는 게 불법이다 보니, 파출소도 왕왕 다녀왔고요. 대구에서 서울로 갈 당시, 가족에게 3년만 노력하고 오겠다며 가족은 대구에 두고 홀로 서울 상경합니다.
이 당시 35세의 나이였고, 여전히 돈이 없었는데, 하루는 자녀가 고기를 굉장히 좋아해서 고기를 사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돈이 없어 1인분에 1,000 원하는 대패삼겹살을 먹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가 기억나서인지 대패삼겹살은 안 먹는다고 합니다. 이 당시에도 아내에게 10만 원의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고 장인어른의 카드로 도시가스를 지불했다고 합니다.
배우라는 것이 정말 TV에서는 좋아보이지만, 이면에는 슬픔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이상 재벌집 막내아들의 드라마, 진양철 회장인 이성민 씨의 무명생활에 대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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